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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화창한 5월의 어느 날. 오후 3시 김포 공항.

나이 서른 넘도록 제주도에 처음 가 보는 나는 지금 매우 들떠 있다.

김포공항 2층 제주항공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오전 근무까지 다 하고 불이나케 온 내가 오히려 1등으로 도착했다.
큰 땅에서 작은 땅으로 떨어져 나가는 여행다운 여행은 자그마치 5년만이다.

숨을 좀 쉴 수 있겠지.
자전거로 제주도를 일주하겠다는 결심을 하기따지 여러가지 요소가 작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는 이유는 물론.. 체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자전거 라이딩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15 : 46

예쁘고 깜찍한 주황색 비행기 안에 앉아 있다.
장난감 비행기 안에 작아진 내가 들어온 듯하다.
음료수나 줄런지 모르겠다.

이륙 준비.
창으로 내다보니 양날개의 프로펠러를 엄청나게 돌리고 있다. 귀엽다.


아직도 돌리고 있다.

활주로를 달린지 5분은 된 것 같다.
제주까지 55분이라는데.. 비행기가 뜨고 부터 55분 인가보다.

시속 600km
고도 6000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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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면 뭘 할지 계획이 없다.
예전에 유럽 배낭여행을 갈 때에도, 숙소도 전혀 예약하지 않는 등 거의 아무런 준비 없이 갔었는데, 사실 그건 게을러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용기가 그립기도 하고 그 무모함이 한심하기도 하다.

제주는 우리나라고 자전거로 일주한다는 테마가 확정되어 있으니 사실 정말 별 계획은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건 외국이건, 목적지의 역사와 유래를 알고 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97년도의 뉘우침을 상기하면 지금 이렇게 아무 계획 없다는 소리를 결코 자랑삼아 떠들일은 아님이 확실하다.

제주공항에 내리면, 미리 말해둔 자전거 대여점에 전화를 해서 우리를 태우러 오라고 한다.
자전거를 찜해두고 근처에서 논다.
메뉴는 무조건 회다.

많은 사람들이 3일에 제주도 일주를 완주 하는 것은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난 할 수 있다. 불가능한 일정이 아니라 힘들다는 정도니까 정말로 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면서 머리를 쉬게 해야겠다.
갖가지 고민들로 지끈거렸던 몇 주다.
몸을 바쁘게 함으로써 머리를 쉬게하는 여행을 만들거다.

제주공항 문 밖에 서서 아무말 없이 1분간 멀뚱히 서 있었다.
계획 없음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딘가로 가야했다.
버스를 탈까.
잠시 고민하다 자전거 대여점 아저씨에게 픽업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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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일주에 대한 설명을 듣고 탑동으로 왔다.
민박을 잡아 놓고 회를 양껏 먹기 위해서다.
횟집이 모여있는 곳으로 10여분을 걸어갔다.
배가 너무 고팠다. 가는 길에 보이는 모든 곳, 심지어 맥도날드까지도 예사로 보아 넘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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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집.
잡어 中 6만원 + 오징어 한 접시 3만원 + 소주 1병.
엄청 비싸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저렴하기를 기대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비쌌다.
계속 나온다.
갈치회, 게불..
밥은 매운탕 + 전복내장 볶음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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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아주머니가 우리를 놀리시려는 건지 음식을 문간까지만 배달해놓고 주지를 않는다. 

우리 거 맞는것 같은데 가서 가져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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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너무 추웠다.
바다를 보기 위해 방파제 앞에 서 있었더니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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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팔 옷이 하나 필요할 듯 하여 탑동의 이마트에 들렀다.
우리는 소녀와도 같았다.
모든 사소한 것들에 웃고 떠들면서 늘 가던 서울의 이마트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제주도의 이마트를 즐겼다.
자전거 안장에 3일간 시달릴 엉덩이를 보호하기 위해, 끈이 달린 방석을 하나씩 샀다.

횟집에서 민박집까지는 해변을 따라 걸었다.
바다 바로 옆에서 농구를 할 수 있는 곳은 얼마나 있을까.
저 고등학생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평화로워 보인다.


제주 땅이 내려다보이기 시작할 때 생각보다 훨씬 크고 훨씬 '낮은' 제주에 반했다.
격자형이 아닌 자유로운 벌집 모양의 크고 작은 밭들. 그 사이사이를 유연한 곡선으로 모양짓고 있는 한산한 도로들. 아파트 단지는 정말 유난히 높아보였다.
제주는 내 생각보다 훨씬 옛스럽고 나즈막하며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11:15 p.m.

3일 만에 자전거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려면 하루에 8~10시간 정도를 달려줘야 한다.
날씨 때문에 우도에 들어갔다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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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

위의 이야기가 벌써 2년이 넘은 이야기가 되었다.

저 만큼 쓰다가 말아버렸는데, 지금 읽으니 매우 유치하면서 아주 재미있다.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많은 정보를 주고 싶어서 쓴 글이었 이제는 자세한 내용은 잊어버렸다.

하여간, 우리는 2박 3일 만에 무사히 완주하였고, 자전거 대여점 아저씨 말씀으로는  여자로서는 거의 상위 5%라고 했다.
그 아저씨는, 우리가 중간에 어느 정도는 트럭을 불러 타고 자전거도 싣고 이동했을 거라고 끝까지 믿는 눈치였다.

첫날 아침 9시쯤 제주도 지도를 펴 놓고 탑동에서 출발해서  그 날 밤에 중문에서 잤으니. 첫날에 얼마나 열심히 달린 건지 알 수 있다.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거리였다.

허벅지 근육이 찢어질 듯 아픈데, 숙소에서 뜨거운 물에 푹 담갔다가 붙이는 파스를 팔다리에 빈틈없이 바르고 자면 아침에 거뜬했다. 이 것이 큰 효과였던 것 같다. 워낙 타고난 체력도 있고.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달리노라면 옆으로 씽씽 두 가지가 지나간다. 

하나는 앙증맞은 스쿠터. 또 하나는 외제 오픈 카.
처음에는 스쿠터에 관심이 많이 간다. 저걸 타면 왠지 내 신체의 자체 동력으로 달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도, 힘도 안 들고 빠르니 주위 경관을 많이 둘러볼 여유가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 완주를 눈앞에 두고 있으면 스쿠터를 타지 않은 것을 정말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자전거 일주를 완주했다는 뿌듯함이 몇 배로 커진다.

내 인생에서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은 정말 큰 의미였다.
일생에 한 번은 꼭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데, 딱 한번만 해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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