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실제로 출생 신고도 되어 있지 않았다는 그 아이들을 아무도 모른다.
아기 '유키'가 뽁뽁이 신을 신고 얼마나 외출하고 싶어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장난꾸러기 '시게루'가 원하는 만큼 소리지르며 얼마나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교코'가 학교에 다니며 피아노 살 용돈을 차곡차곡 모을 수 있기를 얼마나 원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짊어진 '아키라'가 평범한 소년의 모습을 얼마나 원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 아이들이, 떠나버린 엄마를 얼마나 원망하며 동시에 그리워 했을지 아무도 모른다.
숨겨진 그 집 안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이 영화는.. 보고 있기가 정말 괴로웠다.
간결함과 절제미가 단연 돋보이는,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 딱 그런 스타일의 영화였지만, 감동이라기 보다는 어찌나 가슴이 아팠는지... 꽉찬 객석의 여기 저기에서 동시에 새어나오는 한숨 소리들이 이게 보편적인 정서임을 정확히 느끼게 해주었다.
두 시간이 훌쩍 넘는 고통의 시간이 언제 지나가버렸는지 모르겠다.

책임감이라고는 없는 철없는 엄마. 그 엄마가 언제 떠나가 버릴지 모른 채 기다리는 시간이 관객일 뿐이었던 나에게도 위태롭게 느껴졌는데, 같이 살면서도 안정되어 있지 않은 엄마를 보는 이 아이들은 얼마나 불안했을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라는 이 영화가 픽션쪽에 훨씬 가깝기를 바라고 또 바라지만, 아이들의 실제 생활이 이보다 덜하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누구라도 일본의 아이들에서 우리나라의 아이들, 그리고 전세계의 버려진 아이들까지로 시선이 넓어지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엄마를 원망하는지 아닌지 애써 보여주지 않는다. 아무도 모른다는 거겠지.
나쁜 어미. 네 남자에게서 버림받았을 젊은 엄마의 고통... 이것 또한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는 뜻일 수 있다. 그래서 영화는 이런저런 판단은 보류한 채 건조하게 보여주기만 하면서 관객에게 모든 판단을 넘긴다.
아이들은 한번도 울지 않았다.  전형적이고 신파적인 접근을 했다면, 아이들을 펑펑 울려서 관객들에게도 "지금이 우는 시점이야! 감동먹으란 말이야!"하고 친절히 알려 주었을 거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어 버렸다.
엄마가 발라준 매니큐어가 서서히 지워져 얼룩 덜룩한 '교코'의 손가락 만으로도 그 오랜 기다림을 알 수 있고..
하나 남은 초코볼을 꺼내 먹고도 상자를 꼭 쥐고 있는 '유키'을 보는것 만으로도 눈물이 머금어진다.
배란다 너머로 떨어져버린 화분을 바라보는 '시게루'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얼마나 바깥 햇살 속에 뛰어 놀고싶어 하는지 가슴이 찡하다.
주운 고무공을 홀로 던지고 받는 모습에서, 짊어진 무게를 때로는 놓아버리고 싶은 '아키라'의 마음이 전해져 온다.
아 정말 미치겠더라고.
점점 길어가는 머리칼, 한겨울에 반바지를 입은 모습, 점점 마르는 몸, 공과금 독촉장에 그린 엄마의 얼굴,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질 음식을 얻으려고 편의점 뒷문을 지키고 앉은 모습, 깨어나지 않는 '유키'에 놀라 마지막 남은 동전을 공중 전화에 넣으며 조급해하는 손, 결국 비행기 굉음이 울리는 곳에 '유키'를 묻고 마는 큰 오빠의 떨리는 손....아.. 이것들이 죄다 고문이었다.

봄속으로 완전히 들어간 한가로운 휴일 저녁.. 오랜만에 꽉찬 객석을 보며 이 영화의 입소문을 확인하고, 아무나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내몰린 아이들을 역시 건조하게 보여주기만 하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이후에, 또 하나의 비슷하지만 좀더 가까이 느껴지는 영화와 만난 날이었다.

덧붙임:  '야기라 유야'가 얼마나 멋진 청년으로 자랄지 아무도 모른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