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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 듯, 드물지 않게 이런 영화를 만날 때 마다,
서울에 산다는 것이, 내가 다른 많은 것들 보다 영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운명인 듯, 축복인듯 느껴진다.

자리를 맨 뒤로 바꿔야지 생각하며 찾은 티켓 부스에는 "브로큰 플라워 17:00/19:00 매진"이라는 푯말이 딱 붙어 있었다. 
수 많은 극장들이 있음에도 겨우 작은 스크린 몇개를 전전했던 <사이드웨이>와 비슷한 깊이의 감흥을 받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로드무비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과 그 동안 풍경을 살짝 훑는다는 어색한 공통점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러닝타임 내내 목구멍 바로 아래에까지 묘한 웃음이 차 올라 있었고, 키들키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미간은 찌푸려져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생각해 내심 자제하는 와중에 모르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폭소하기를 여러번. 
사소하게 보이는 모든 것이 너무나 유머러스하면서, 동시에 이 남자의 잠깐 맺힌 눈물에도 깊은 동감을 하게 되는영화다. 
'짐 자무쉬'와 '빌 머레이'의 조합이라.. 아.. 그 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메소드 배우라는 사람들이 얼굴에 다양한 표정을 숨기고 있다가 적절한 때에 적절한 근육 움직임과 눈빛을 내어보이는 사람들이라면,
일반적으로 메소드 배우에 포함되지는 않는 이 '빌 머레이'라는 아저씨는 "무표정도 표정이다"라는 사실을 바로 증명해주는 모범 예시다.
오히려, 눈썹 한쪽을 치켜 올리는것 만으로도 심리상태를 다 표현할 줄 아는 이 아저씨의 가벼운 진중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영화는, 돈주앙과 이름과 경력이 같은 '돈 존스톤'이라는 왕년의 바람둥이가, 20년 전에 생겼을지도 모를 가상의 아들의 실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옛 용의자들을 찾아 나서고 가시적인 소득은 없이 돌아오기까지의 침울한 여행이다.

컴퓨터 사업의 성공으로 생긴 여유 만큼이나 이제는 쇠락해버린 몸뚱아리는 비싸보이는 가죽소파와 '혼연일체'가 되어 있고, "정부같은 느낌이 싫다"며 떠나는 연인을 붙잡지도 못하는 무기력에 빠진 남자가 있다.
어느 날 그는, 아들을 낳아 혼자 키웠고, 그 아들이 아빠를 찾아 떠난것 같다는 내용의 핑크색 편지만을 단서로, 애엄마일 가능성이 있는 네명의 여자를 차례로 만나러 간다.
그가 옛 연인들과 재회하며 네개의 각각 다른 감정을 갖는 동안, 우리는 고작 네 여자의 인생으로부터 모든 사람의 인생을 본다.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그녀들은 그에게, 다시 잠자리를 할 만큼의 환대와 남편 앞에서의 두려움, 꽃도 받지 않을 정도의 냉담함, 노골적인 분노를 보인다. 
핑크빛의 타자기를 갖고 있던 네 번째 여자에게서 눈을 얻어 맞고 돌아온 그에게, 동네를 서성이는 낯선 청년들은 모두 수상해 보이고 마치 20년을 억지로 참아왔던 듯 갑작스런 부성애마저 생길 지경이다.

'돈 존스턴'은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여기에 있는 것은 현재다"라며.. 애써 "현재"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사고로 죽은 다섯번째 여인의 비석 앞에서 맺었던 눈물 만큼이라도, 얻어 맞아 생긴 눈의 피멍 만큼이라도, 현재에 이어진 과거의 힘을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짐 자무쉬'와 '빌 머레이'는 인간과 인생의 기본으로 다가서고 있다. 사랑, 부성애, 만남과 헤어짐, 인연.

영화는 예상했던 대로, 결말이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국내 개봉용 홍보 카피들로 영화를 미루어 짐작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에겐 애초에 이런 기대는 없었을 것이다.
오묘한 끝맺음을 보면서, "그래서 대체 애엄마는 누구란거야? 아들을 만나 얼싸안아야 되는거 아냐?" 따위의 불평을 할 필요도 없고, 확실한 해답을 구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 것은 처음부터 문제가 아니었다. 부드러운 여운이 곧 명쾌함이다.

그외에도 놓치면 아쉬울 점들.
+ 쉽게 세뇌되는 '이디오피안 뮤직'의 힘.
+ 옆집 친구인 '윈스턴'에 대해서는 생략했지만, 대단한 주연급 조연이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 하나.
영화의 맨 마지막에 약 5초동안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짧은 순간 동안이지만 너무나 강력한 포스를 뿜는 그 청년은.. 빌 머레이의 진짜 아들이다.
정말이지 마지막 장면에까지 웃겨주는 짐 자무쉬를 어쩌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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