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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재미있고 멋있는 작품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을 휩쓴 이후 국내에서 개봉할 때까지 시간 간격이 생기다 보니, 그 사이에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선입견과 기대치를 가져버리게 되었고 쏟아지는 정보를 피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도 많다. 

며칠 전에는 아침 뉴스마저 하일라이트를 보여주면서 줄거리를 읊어버렸다.

우선 <셰익스피어 인 러브> 이후, '콜린 퍼스'와 '제프리 러쉬'를 조금 다른 컨셉트로 같은 영화에서 보게 된 것이 반가웠다.

당당한 왕이 되기 위해 말더듬는 버릇을 고치려고 온 노력을 다하는 ‘조지 6세(콜린 퍼스)’와 그의 스피치 테라피스트인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쉬)’의 만남, 마음을 열어가며 겪는 갈등, 그 중에 드러나는 조지 6세의 아픔, 누구보다 의지할 수 있는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거기에, 백성을 사랑하는 조지 6세의 훌륭한 성정, 사랑으로 내조하는 현명한 엘리자베스, 그리고 마침내 진심을 전하는 성공적인 연설의 이야기다.
'아카데미용 영화'로의 모든 요소를 갖췄다.
역사의 큰 흐름 속에 존재하는 개인 + 권력자이기 이전에 아픔을 지닌 개인 + 공인의 인간적인 모습 +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인간 + 신분을 뛰어넘은 우정 등이 그러한 요소이다.
태평한 시대 상황이 아닌데도 이야기는 역사 속의 개인에 집중한다. 나머지 이러 저러한 역사적 배경들은 다 잘라냈는데, 그 덕분에 시대극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다가오는 소설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때는 라디오와 마이크가 발명된 후이다. 그 발명은 대중연설을 가능하게 해 주었지만 말을 더듬는 앨버트 왕자(이후 조지 6세)에게는 기회라기보다는 마음을 더욱 옥죄는 또 하나의 부담이다. 
하지만 왕자는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고 그들을 대변하고 위로하기 위해 훌륭한 연설을 하고싶은 욕망이 큰 사람이라 이 거대한 마이크가 주는 공포를 꼭 이겨내고 싶다.
게다가, 이런 신문물에 잘 적응한 아버지는 "천천히 편안하게 말해보라"는 조언을 눈을 부릅뜨고 소리소리 지르니 어릴때부터 겪어온 강박과 트라우마를 더 이끌어낼 뿐이다.
"백성의 말을 대신 해야 하는데, 말을 못해!"라는 자책에서, 끝까지 노력하는 이유가 권력욕이나 부끄러움 때문이 아닌 진심으로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단순한 남의 나라 역사 속 에피소드에 이렇게 감정이입을 하고 설득되는 것을 보면 영화의 힘이란 참 대단한 것이다.

콜린 퍼스의 말 더듬는 연기도 아주 좋다. 충분히 실감이 나서 말이 목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그 답답함을 똑같이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지루한 줄 모르고 조지 6세가 만드는 긴장감을 잘 따라가게 된다.
조금 의외였던 점은, 조지 6세와 라이오넬 둘이 친해지기까지의 이야기가 의외로 뻔한 전개를 따랐다는것이었다. 그 소소한 에피소들이 두 사람의 인간적인 유대를 더욱 강하게 하고, 가벼운 웃음을 많이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됐지만, 상당히 전형적긴 했다.

반면에,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카메라 워크는 오히려 교과서적이라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마이크가 엄청나게 크게 느껴지는 조지 6세의 시점, 클로즈업, 등 뒤의 트래킹 쇼트 등으로 그를 짓누르는 중압감과 불안, 부담, 강박을 고스란히 전해 준다. 그 집중된 수만개의 눈알들, 잡아 먹을듯 거대한 마이크.
콜린 퍼스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그가 이 역에 정말로 잘 어울리는지는 판단이 잘 안 된다.
그의 다문 입술을 좋아하는데, 말더듬는 연기는 정말 훌륭했지만 '왕자'의 이미지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멀끔한 영국 신사로는 딱 맞는데, 그것과 비슷한 종류일 수도 있는 '왕자'로는 왜 이렇게 매치가 안되는 걸까.
이 역이 원래 '폴 베타니'에게 제안 되었는데 그는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고 난 지금 후회 막급 중이라고 전해진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이 배역에는 '폴 베타니'의 얼굴이 더 어울렸을 것 같긴 하다. 실제 조지 6세와도 더 닮았다. 하지만 눈동자 만으로 국민에 대한 사랑를 표현하는 온화한 이미지는 콜린 퍼스에게 있다.

+ '가이 피어스'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그 사이 많이 늙은 것 같아서 더 놀랐고, 콜린 퍼스보다 7살이나 어린데 형으로 나와서 눈을 의심했다. 사실, 이 에드워드 8세(이후 윈저공)의 삶이 훨씬 더 영화적인데 이 영화에서는 배경 정도로 쓰이고 있다.

+ 감동적인 대사 하나
연설을 하기 전, 중압감에 시달리는 남편에게 건네는 엘리자베스의 감동적인 말.
“당신이 세번이나 청혼한 걸 다 거절했던 것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왕실 생활이 싫어서였어요. 하지만 당신이 말더듬이라 조금 안심이 됐었죠.”
'헬레나 본햄 카터'도 의외로 역할에 잘 어울렸다.

+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자 최고의 연설 장면에 배경이 된 음악은, "베토벤 심포니 7번"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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