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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TV의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경규가 멤버들과 단체 생활을 하는 동안 주어지는 미션을 대충 이행하면서 카메라를 향해 연신 “찍었어? 나 뭐뭐 하는거 찍었어?”라는 소리를 해 댔던 적이 있다.
이 대사가 웃기다 보니 다른 출연자들도 따라하고 거의 유행어가 되다시피 하여 짜증나리만큼 계속됐다.

이 것이 방송의 기본 속성일 것이다.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 무엇인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필름에 무엇이 담기는가, 편집을 거친 결과는 무엇인가, 편집과 왜곡이 종이 한장 차이라고 볼때 최종 결과물은 시청자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이런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시청자인 우리가 보게되는 그 최종 영상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불합리하고 치사하고 비열한 거짓들이 양념으로 또는 주메뉴로 사용됐을까 싶은 의심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옥에 티 찾기 따위를 하면서 대단한 헛점이라도 발견해낸 양 뿌듯해 하고는, 그 프로그램 전체에는 홀딱 속아 넘어가길 반복한다. 

이 영화 <포커스>는 풋풋하고 촌스러운 23살의 아사노 타다노부가 등장하는 페이크 다큐멘터리이다.

형식이나 주제, 비주얼, 아사노의 연기 모두에서 충격받았다. 
현실에서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이 더욱 아찔했다.
여기서 아사노의 연기는 정말 사실적이다. 특히 말하는 목소리와 말투, 일본어를 몰라도 정말 일상의 말로 들렸다.
많은 우리나라 영화에서 배우들은 자연스런 구어체를 쓰지 않는다. 
아무리 예산이 많이 들어간 영화라도 단어와 문장이 어색하면 당최 참고 볼수가 없다. 연극의 과장된 발성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처럼)


'가네무라(아사노)'는 무선 통신을 이용하여 공기중에 떠다니는 주파수를 엿듣는 것에 깊이 빠진 매니아다. 
TV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그를 취재한다. 소심하고 어리버리해 보이는 가네무라는 모자이크와 음성변조를 소심하게 요구하면서 PD의 말을 모두 믿고 그 불법 행동을 털어놓는다.
갈수록 대범해지는 그 방송은 처음 말과는 달리 가네무라의 집을 침범하기도 하고 신주쿠역 캐비넷에 총을 넣어뒀다는 범죄자들의 대화를 엿듣고는 시실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가네무라는, 남들이 모르는 사실을 알게된다는 것을 재미로 여길 뿐 엿들은 사실에 실제로 발을 들인 적이 없다. 
불법이나 비리를 알게된다 하더라도 말려들기 싫어서 듣고 말 뿐이다. 
이것이 그 나쁜 ‘방송’ 때문에 망가져가고 급기야 총을 쥐게 된 가네무라는 불량 청소년들을 죽이고 이 모두를 카메라에 담는다.

이제 상황이 바뀌어 가네무라는 다큐멘터리 제작팀의 사람들과 카메라를 인질로 삼고 길을 달린다. 
이렇게 도망치는 동안에도 자신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경찰들의 무전 통신을 엿듣게 되는 아이러닉한 상황이 벌어진다.
바닷가로 달려 일출을 보면서 가네무라는 말한다. 
“아, 정말 아름답다. 저걸 찍어. 아름답다. 오늘은 좋은 일만 생길것 같아.”
붉은 해에 마음을 뺏긴 순간 총을 잡은 여자가 가네무라를 쏜다. 카메라는 꺼진다.

이 영화 <포커스>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던 청년이 매스미디어에 처절하게 희생당하는 과정을 섬찟하게 보여준다. 긴장감 최고의 영화다.
처음부터 끝까지 카메라의 렌즈가 우리의 시선과 겹친다.
카메라가 꺼지면 스크린도 암전이 되고, 화면 중앙의 포커스와 Low Battery도 그대로 보인다.

우리가 보고 웃고 즐기는 그 수많은 방송들, 우리는 TV를 통해 그것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시청율을 목숨처럼 여기는 제작들의 개인적인 프리즘을 통해, 카메라의 왜곡된 렌즈를 통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보여주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지난 2006년 일본 인디 필름 페스티벌 때에 한국을 찾은 아사노의 인터뷰 중에 <포커스>에 관한 언급이 있다.  역시 내가 배우에게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아사노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너무나 기뻤던 순간이었다.

Q 여러 작품에서 굉장히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A 배우를 목표로 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연극을 하는 배우들은 인사말 조차도 과장된 연기를 펼친다. 나는 우리가 평소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배우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웃음)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평소에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신경써서 연기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찍었던 <포커스>란 영화가 출연작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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