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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의 대표적인 배우 장국영이 사망한 날짜는 2003년 4월 1일이다.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투신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별 거지같은 만우절 거짓말이 다 있다'고 생각했던.

​그의 죽음 당시 홍콩 현지의 반응. 동료 배우들이 전하는 말.

1.

장국영의 장례식은 사망 1주일 후인 4월 8일 차이완에서 화장으로 치러졌다. 이 자리에는 그와 특히 친했던 임청하, 매염방, 모순균, 유가령, 양조위, 적룡 등의 배우들이 참석했고, 작곡가인 황점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그는 콘서트가 끝나면 직급에 관계없이 모든 스태프들에게 자신이 친히 감사의 글과 사인이 담긴 기념품을 건네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스태프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했어요. 장국영은 하늘이 내린 우리의 보물이었는데 이렇게 한창 빛을 발할 때 그를 데려가버리다니... 아마도 이건 모두들 주위 사람들을 아껴달라는 어떤 계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2.

장국영의 죽음을 가장 슬퍼한 이는 매염방이었다. 매염방과 연인관계였던 허지안은 "그녀가 곡기를 끊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녀는 거의 정신이 나가 불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경을 읽다가 또 울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3.

4월 8일에 열린 금상장 시상식에서 홍콩 "4대천황"인 유덕화, 여명, 곽부성, 장학우는 함께 무대에 올라 <영웅본색>의 주제가인 장국영의 "당년정"을 불러 추도했다.

장학우는 추도사를 말했다.

"무대에서 그는 모든 면에서 완전한 예술인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선천적인 조건과 후천적인 조예를 모두 갖춘 예술인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와 무대극을 함께 하고 싶었고 극본도 다 준비되었는데, 이제는 완성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내세가 있다면 그도 기꺼이 함께할 수 있을 겁니다."

4.

장국영화 함께 작업했던 서극 감독은 "그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열성적으로 대했습니다. 그 진심어린 미소를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그와 일했던 사람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를 칭찬합니다."라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5.

배우 겸 가수인 종진도는 "내가 그를 안 것은 21년 전 <금옥만당>을 찍을 때였습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내가 파산선고를 받았을 때였어요. 내가 실망한 기색으로 있자 그는 '도와드릴 건 없나요?'라고 물었어요. 근 10년 사이에 등려군도 떠났고, 진백강도 떠났어요. 이제 장국영이 떠났어요. 파산해서 많은 부채를 지고 사는 나도 살아가는데, 그렇게 많은 걸 가진 그가 왜 죽어야 했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파산선고를 당할 때보다 더 가슴이 아픕니다."라고 말했다.

6.

임청하는 평소에 장국영이 병을 앓으면 간호도 하고 장국영과 같이 쇼핑도 하는 등 친한 관계였다. 그러나 결국 "장국영의 우울증엔 도움이 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전했다.

장국영의 죽음에 몇달 앞서,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던 자신의 어머니의 투신을 이미 겪었던 임청하는 더욱 슬퍼했다.

 
 

7.

장국영의 죽음으로 홍콩 TV에서는 앞다퉈 추모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에 나온 담영란은 "한창 활동할 당시 장국영과 좋은 친구사이였는데. 팬들의 불화로 앙숙처럼 비춰졌지만 다행히 우리의 우정에는 금이 가지 않았다."고 전했다.

진소춘은 데뷔 초기 장국영의 백댄서를 했던 얘기를 꺼냈는데 그는 그때도 장국영이 거만하지 안하고 모두에게 친절했다고 말했다.

허지안은 데뷔 초기에, "장국영은 내가 가진 돈이 얼마 없는 걸 알고 일부러 나를 불러 듀엣 곡을 부르곤 했다. 그가 사준 옷을 기념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전했다.

8.

영화 <갈채>에서 종보라, 진백강과 장국영은 당시 데뷔 초기에 함께 인기를 얻어 '삼검협'이라 불렸다.

종보라는 1989년 채무 관계를 비관해 서른 살에 투신했고, 진백강은 1992년 다량의 약물을 복용하고 혼수상태에 빠져 17개월을 끌다가 1993년 10월에 35세로 생을 마감했다.


장국영의 영어 이름은 레슬리 청 (Leslie Cheung), 원어 발음은 장궈룽.

생년월일 1956년 9월 12일. 사망 당시 나이 46세.

장국영의 자살 이유는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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