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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봤던 모든 영화 중에서 내가 꼽은 Top 10 리스트에 당당히 3위 이내로 랭크 되었던 눈부신 작품 <사이드웨이>이다.
그 해, 아카데미 상의 다섯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두개의 골든글로브를 수상한데다 내가 개인적으로 주는 상까지 받는 더 없는 영광을 누렸던 것이다. 이 초록색과 자주빛이 섞인 걸작 영화와의 극적인 만남을 기념하며 나는 그날 밤 와인을 한병 마셨다. 이태리산 치즈에 올리브까지 갖추고 말이다.
나는 와인과 어울리거나 재즈와 아는 척 하며 지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2005년 초 어느 일요일 아침, 눈꼽도 떼지 않은 채 갔던 상암동 CGV에서 이 영화를 영접했던 날, 와인 가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전기가 몸을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적어도 와인병 코르크를 능숙하게 따는 사람이 되었고, 잘 와닿지 않았던 그 Jazz라는 것과의 사이에도 장막 하나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여기, 곁길로 샌 두 남자가 있다. 그런 일탈의 명분은 총각파티 겸 와인 시음이다.
잘 풀리는 일이라고는 없어서 그 여행이 별로 내키지 않는 신경쇠약의 남자와 이미 가진 것의 소중함은 잠시 잊고 짧은 일탈을 기대하면서 의욕이 펄펄 넘치는 남자.
출판의 기회에서 자꾸 미끄러지는 작가이자 영어 선생이며, 이혼 2년째인 '마일스(폴 지아마티)'는 아직도 전처의 재혼 소식에는 진정제가 필요하. <맨하탄>의 우디 앨런과 아주 겹치는 캐릭터이다.
무식하게 힘만 세고 아랫도리가 이끄는 대로 감정에 솔직한, 결혼을 일주일 남기고 여행을 떠난 영화 배우인 '잭(토머스 헤이든 처치)'.
이 두 사람이 친구라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지만, 이런 불협화음이 묘하게 균형을 맞춰 수월치 않은 이 로드 무비를 이끌어간다.

곁길로 새어 나가 있는 동안 만나게 된 두 여자를 더해서, 그들 넷을 엮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 와인이다.
와인은 '신의 물방울'로의 그 역할을 다하고, 여러모로 불쌍한 마일스가 사랑을 진지하게 찾아가는 큰 방향 속에 잭의 동물적인 육감 스토리가 버무려져 분위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유지한다.

그들이 와인을 두고 나누는 거의 전문가 수준의 대화들도 흥미롭다.
구강 세척제보다 못하다는 구분까지 할줄 아는 마일스의 와인 감별 교육을 받아가며 넓게 펼쳐진 산타 바바라의 와이너리를 여행하다보면 인생에서 샛길로 빠지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선물이 될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사이드 웨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주된(main) 길이 먼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가야 할 큰길을 어쨌든 걸어가고 있으니 그 길의 단조로움이 답답할 때는 곁길을 한 번쯤은 두리번거리는 것이 좋겠다. 40대가 되었어도 아직도 철 없어 보이는 이 두 남자도, 옆길로 빠지고 나서야 현실을 위로하는 보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눈 팔기를 두려워 말자. 오토바이 헬멧에 맞아 코가 부러져 피범벅이 되더라도 말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재즈 선율, 바로 한병 따서 '마일스'의 조언대로 시음해보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와인의 유혹, 개성이 확실한 네 주인공, 열린 마음만이 사랑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 아니, 이것 저것 다 필요없고 그냥 무지막지하게 웃긴 두 남자의 뻘짓을 따라 생각없이 흘러가도 충분한 걸작 코미디이다.
200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토머스 헤이든 처치'가 남우 조연상 후보로 카메라에 잡혔을 때 헤벌레 웃던 모습이 생각난다. 이 배우의 잊을 수 없는 동물(?) 연기와 더 이상 어울리는 배우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마일스'를 완벽하게 그려 낸 '폴 지아마티'에게 너무나 큰 칭찬을 하고 싶다. Two thumbs up!!!

마지막 장면.
용기를 낸 '마일스'가 '마야'의 문을 노크하는 소리 만으로 끝을 맺는다. 모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아름답게 느껴지는 여운이 가득한 마지막 장면이다.
눈썰미가 있다면 영화의 가장 첫 장면도 노크하는 장면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낼 수도 있다.
이 마지막 장면이, 영화 <사이드웨이>가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훌쩍 뛰어 넘어버렸다는 가장 확실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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