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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에 대해 '서른 하고도 다섯명의 거장 감독들의 이름을 하나의 엔딩 크레딧에서 보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주는 옴니버스 영화'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하나 더, 칸 영화제 60주년과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광화문에 있는 극장 '씨네큐브'에 갈 때, 시청역에 내려서 걷다가 모퉁이를 돌면 나오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는 나는,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에야 이 영화의 제목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그들의 '영화'가 아니라 '영화관'이라는 것을 말이다.

세계적인 감독이 된 그들을 지탱해주는 어린 시절 영화관의 기억, 그들의 창작품의 최종 목적지인 영화관에 갖는 생산자로서의 의미, 아니면 영화관을 배경으로 한 또 하나의 영화... 그 모든 것을 기대해도 좋을 제목이었다.

자그마치 서른 다섯명의 감독이 포함되어 있으니, 한편 한편이 무척 짧을 거라는 것은 당연했다.
이 생각에 이르니 저 대가 감독들이 3분여의 짧은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소비했을지 궁금해서 무척이나 설렜다.
한정된 시간이 주는 압박, 쟁쟁한 다른 감독들과 아주 직접적으로 치뤄야 할 경쟁, 그리고 영화관에 대한 너무나 많은 생각들로 감독들은 힘들었을 것 같다.

서른 다섯편의 기억들 중에서 영화에 완전히 파묻혀 우는 여자를 그린 이야기들이 2~3편이나 되었는데, 영화라는 것은 정말이지 단순한 유희나 시간 때우기용 취미의 의미를 완전히 뛰어 넘어 나를 위로하고 세상을 건드리는 그 무엇, 괴물과도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제목 → 이야기 3분 → 감독이름.
이야기를 먼저 보여준 후에야 감독을 밝히는 이 구성이 정말 짜릿했다. 

마치 예전 PC통신 시절, 영퀴(영화퀴즈) 게시판에서 오가던.. 머리속 데이터베이스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던, 그래서 정말로 영화 많이 본 사람이 가장 우승 확률이 높았던, 고수가 진정한 고수로 대접받아 마땅했던 그 퀴즈판을 떠올리게 했다.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기까지의 잠깐동안 놀라고 웃고를 반복했다.
이건 정말 흥미로운 2시간 동안의 영퀴 시간이었다.
미리 서른다섯명의 감독을 기억하고 한편씩 볼 때마다 감독을 알아맞히는 퀴즈의 형식으로 즐기면 최고일 영화.
영화속 스크린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가위 이미지에서 '데이빗 린치'를 맞힐 수 있다. 
극히 짧은 그 3분을 롱테이크에 대부분 쏟는 것에서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작품임을 맞힐 수 있다.
낭만적인 색감의 화면과 몽롱한 대사에서 '왕가위'를 느낄 수 있고, 노동자와 영화를 뒤섞은 메세지에서 '아키 카우리스마키'를 발견할 수 있다.

가난한 옛 중국을 배경으로 영화에 얽힌 어린 시절을 그리는 '첸 카이거', '장이모' 감독을 반견해 내는 재미를 느끼다 보면 시간은 아쉽게도 잘도 흘러버린다.
'기타노 다케시'가 영사 기사로 출연해 뻔뻔스럽게도 <키즈 리턴>을 틀거나, '라스 폰 트리에'가 멀쩡하게 생긴 얼굴로 앉아서 괴상한 짓을 하는 것을 보며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게 된다.
이렇게, 각 3분 씩 서른 다섯번의 설렘과 뭉클함, 즐거움, 감탄, 회상으로 뒤섞인 감정을 끌어올려 주었다는 말이면 이 영화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아.. 노스텔지어마저 느껴버린 그들의 영화관에 나는 어떤 나만의 기억을 더할 수 있을까.

널찍한 좌석 간격과 들어올려지는 팔걸이, 맛있는 팝콘 따위는 중요한 의미가 아니었던, 영화를 보여주는 기능에 충실했던 옛날 극장들을 기억한다.
3류 영화 동시 상영관에서는 실제로 담배꽁초가 날아다녔다는 증언들에 마음이 움직이면서, 영화와 담배는 참 잘 어울리는구나 싶어서 "극장에 담배를 허하라!"고 까지 말하고 싶어졌으니 정말 이들의 이야기에 완전히 동화됐음을, 나도 이들과 같이 늙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영화가 시작될 때, '페데리코 펠리니에게 바친다'는 글귀가 나온다.
펠리니 숭배자의 대표인 우디 앨런은 왜 참여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과 칸 영화제에 잘 참석하지 않은 탓일까 하는 대답을 해가며 궁금증은 일단 뒤로 미뤘다.
이유인 즉, 이 감독들이 가진 칸 영화제와의 모종의 관계는 '황금종려상'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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