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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디 앨런

우디 앨런 감독의 40번째 장편인 이 작품은 뉴욕을 떠나 만든 ‘런던영화’ 중 하나이자 ‘결혼생활 영화’ 중 하나이고, ‘부적절한 연애소동 영화’ 중 하나이다. 아쉽다면 세번째 항목에만 충실한 듯 보인다는 것이고, 그렇다보니 재미 만큼은 아주 크다.
이 영화의 공간인 런던은 그가 뉴욕에 있을때 만큼의 큰 요소가 되지 않는다. 런던은 그저 풍경으로만 존재한다. 부부 사이의 균열과 그 속에서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대화, 복잡하게 얽힌 관계는 여전한데도 어쩐지 <부부일기>, <한나와 자매들>에서 만큼 미묘한 부부의 심리를 섬세하게 전하지 못한다.
수다스러움은 여전하지만, 옛 작품에서처럼 수다속에 한번 꼬여 들어있던 삶의 고찰이나 심리 묘사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영화는 일단 재미가 있고, 이제 이 노인은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기본은 하는 경지에 이르러있다.

 
 

2. 환상

번역된 제목이 너무나 평범하긴 하지만 ‘환상’이라는 단어는 적합하다.
작년 칸 영화제에서 우디 앨런이 인터뷰한 것을 보자.
“인생에 대한 내 유일한 관점은 이것입니다. 인생이란 고통스럽고 악몽 같고 무의미한 경험의 연속이라는 것이죠.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을 속이고 남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에요. 니체, 프로이트, 유진 오닐도 다 그렇게 말했어요. 이번 영화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한 커플은 스스로를 속이고 멍청한 사람들과 어울려요. 그래도 아무튼 저보다는 행복하죠.”
이 말마따나, 영화에서는 점쟁이를 맹신하고 전생과 환생을 믿는 '헬레나'만이 가장 행복해 보이는 결말을 맞는다. 쫓고 있던 환상이 깨지지 않는 사람은 그녀뿐이다. 실제로 그녀의 '환상'은 딸의 사업 자금을 대지 않기로 하는 가장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게하는 순기능도 한다.

3. 조쉬 브롤린(로이 역)

우디 앨런 감독은 신경증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멋진 주인공 캐릭터와 더 멋진 상대 여배우를 창조한 다음 그 주인공 역을 자기 자신이 맡아버릴 수 있는 능력과 권한을 가진 거의 유일한 작가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 들어버린 이 천재 작가가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로 선택하는 배우들이 누구일까에 더 관심이 간다.
이번 작품에서는 배우 ‘조쉬 브롤린’이 새로 눈에 띄는데, 필력이 좀 부족한 작가로 주위 사람들과 내면의 압박에 시달리고 온갖 신경질적인 행동은 다 하는 사람이다. 그 와중에도 반대편 건물의 빨간 옷 여인에게 추근대고 급기야 그 집으로 거처를 옮기기까지 하는 무모한 용기만 가득한 캐릭터이다.
그는, 작가 지망생인 친구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처녀작을 훔쳐 자기 작품으로 둔갑시켜 출판사에 넘겨 호평을 받는다. 그런데, 알고보니 친구는 죽은 것이 아니라 혼수상태였고 살아날 확률이 매우 높다. 
로이가 환상을 좇아 이루게 된 그 모든 행복이 한꺼번에 깨지는 순간이다.

4. 안소니 홉킨스

'안소니 홉킨스'는 애처로운 ‘알피’역을 맡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웰빙에 눈을 떠 이혼을 선언하고 운동과 태닝으로 허황된 청춘을 갈구하면서 딸보다 어린 콜걸 출신 여자와 결혼하기에 이른다.
비아그라에 의지하면서 청춘과 젊은 여자라는 환상을 유지하려 애쓰지만 당연하게도 환상은 깨지고 현실로 돌아와 조강지처에게 용서를 빌지만 외면받는다.
이제 '한니발 렉터'는 찾아볼 수 없는 그에게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한니발 렉터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하다보니 후작에서도 대부분 이어져왔던 터라 이런 역할은 처음인 것 같은데 큰 용기였겠다 싶다. 좀 더 일찍 했어도 좋았으련만.

5. 샤메인

콜걸 출신 삼류 배우로 알피의 재산을 노려 결혼한 여자이다. 이 역을 맡은 '루시 펀치(Lucy Punch)'라는 생소한 여배우는 이 샤메인 역할에 정말 잘 어울린다.
이 역에 '니콜 키드먼'이 될 뻔했다는데, 이 배우만큼 자연스럽진 못했겠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더 크게 개봉하는 것에는 아주 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6. Tall Dark Stranger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인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는 점성술사들이 말하는 "귀인을 만나게 될거야"와 같은 관용문이다. 극중 대사로만 들어도 정황상 정말 웃기다.
극중에서는 점쟁이가 헬레나에게 해준 말인데, 그 얘기를 들은 사위 ‘로이’는 "그건 저승사자일 거예요."라고 되받는다. 결국 저승사자와의 만남에 준하는 암담한 상황에 처하는건 ‘로이’ 자신이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빠르게 진행되는 스토리에 지루하지 않게 빠져있었지만, 개운하지는 않다.
아직도 왕성한 우디 앨런이라 다행이고 감사하지만, 한마디 전할 수 있다면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
<스타더스트 메모리즈 stardust memories, 1980>에서 우주인 '오그'가 했던 말, 
"우리는 당신의 영화를 좋아해요. 특히, 초기의 그 우스운 영화들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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