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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훌륭한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미루고, 꽤 오래 기억될 영화임에는 틀림 없다.
신기하게도, 보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감정이 일어나고 두 부류로 정확히 나뉘는 등장 인물들 중에서 어느 한쪽을 자연스레 택해 응원하게 되며, 어느 쪽에 섰느냐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객관화 한다. 그래서, ‘암울한 상황’에 있는 나는 잠시 우울해졌다.

1. 등장인물

톰과 제리 : 지질학자로 은퇴를 앞둔 '톰'과 심리 상담가인 '제리'는 아름다운 자연속의 아늑한 집, 풍요로운 먹거리, 잘 자란 변호사 아들, 사람이 끊이지 않는 인덕 등을 모두 다 갖춘 부부이다.

메리 : 제리의 직장 동료. 젊은 시절에는 많은 남자 친구들을 가졌던 것 같지만, 이혼을 한 후 현재는 처절한 외로움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도, 극복하지도 않는 무책임한 삶을 사는 중이다.  
허드렛일을 하면서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데, “작고 빨간 중고차”와 같은 단기적인 목표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상황이 나쁘지 않고 잘 지낸다는 가면을 쓰고 불행한 자신을 애써 부정하면서 톰과 제리 부부에게 크게 의지하고 있다.

켄 : 톰의 친구. 역시 주체할 수 없는 외로움을 음식으로 채우는 뚱뚱한 싱글이다. 메리에 대한 마음을 조금의 전략이나 여과 없이 돌격 행동으로 옮겼다가 벌레 취급을 당한다.

조이 : 톰과 제리의 잘 자란 변호사 아들. 메리가 관심을 보일 때는 어쩐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여 일말의 판타지를 선사하더니 갑자기 훌륭한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타난다.

로니 : 톰의 형. 아내를 여읜 여든 살 정도의 남자. 이런 쓸쓸한 노인도 안정을 찾기위해 오는 집이 톰과 제리의 완벽한 러브하우스이다.

 

2. 완벽이란 것이 있을까?

영화 초반, 아름다운 자연과 4계절의 변화와 음악, 음식, 소박한 일상의 파티가 주는 부드러운 분위기에 싸여 마비돼 있던 감각이 메리의 히스테릭한 변화를 따라 조금씩 살아난다. 완벽한 첫 만남에서부터 수십년을 지나서도 흠잡을데 없이 행복한 노부부와 완벽하게 불행한 중년 싱글들의 직접적인 대비는 양쪽 모두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행복하기 그지없는 톰과 제리 부부의 집은 어찌나 완벽한지 이 집을 찾는 불쌍한 싱글들의 주거공간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곳이 얼마나 황폐할지 상상이 될 정도다. 
이 집에 격의 없이 들락거리는 그들은 일견 상당한 위안을 얻는 듯 보이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몰골로 나타난 메리에게 이 집은 더이상 따뜻하지 않다. 결국 자신을 보호할 갑옷은 스스로 만들어야 하고,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라는 것이다.

3. 잔혹 동화

겉으로 보이는 고매한 인격의 이면에 존재하는 잔인함이 슬슬 드러날 때 이 영화의 장르를 다시 생각해본다. 
톰과 제리 부부는 메리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았지만, 메리의 문제가 자신의 아들과 결부되자 돌변한다. 메리 역시 켄을 뚱뚱하다는 이유만으로 경멸하다가, 조이에 대한 마음이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거부당하자, "살이 안 쪘을땐 괜찮았겠다"며 켄을 향한 시선을 바꾼다. 더 나아가 로니에게까지 의미있는 칭찬을 던지며 더 없이 부박해진다. 
그 외에도, 로니의 아내가 죽자 아들이 올 때까지 5분도 기다려주지 않고 장례를 치르고는 간소하게 잘 치렀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로니, 톰, 제리의 칼날같은 이성도 참 섬뜩하다. 스킨헤드 아들의 말을 들어보면 로니는 아내가 살아있을 때 좋은 남편도 아니었고, 그런 아버지를 비난하는 아들 역시 그다지 효자같지 않아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모든 이기적인 인물들 중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여유로운 자들이 감추고 있는 칼날이 더욱 날카로울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톰과 제리 부부다.

아들 커플이 방문했을 때, 어느새 기피 대상이 돼버린 메리가 와 있음을 알리면서 나누는 그들의 제스쳐는 모욕적이고 무섭다. 
마지막 장면, 함께 있지만 철저히 소외돼 침묵속으로 침잠하는 메리의 충격적인 장면에서 잔혹함은 절정에 이른다. 그 겨울은 톰과 제리 가족에겐 변함없이 찾아올 봄을 위한 준비로 보인다. 하지만, 침묵 속에 나동그라진 메리에겐 그녀가 중대한 위기의 임계점에 근접했음을 은유하는 것 같아 애처롭고 위태롭다.
이렇게 끝을 맺어버리는 이 영화... 과연 '휴먼 드라마'일까 '심리 스릴러'일까.

그러다 영화의 거의 마지막에 이르러, 아내가 죽고 난 빈집에 손님처럼 멀뚱히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로이의 특별하지도 않은 대사 “I don’t know what to do.”가 귀에 남으면, 이 영화에서 재 확인한 것은 역시 결혼의 효용에 관한 풀리지 않는 딜레마이다. 
또,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아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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