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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극장에 거의 5개월 만에 갔더니 그 분위기 자체가 낯설 지경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큰 미안함을 남기고 떠나버린 전설의 야구선수 '최동원'과 배우 '양동근'이 극장으로 이끌었다.

 

야구는, 격렬한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뚱뚱한 사람들도 많은 이상한 구석이 있는 스포츠이며, 구기 종목중에 유일하게 공이 아니라 사람이 들어와야 점수가 되는 왠지 인간미가 있는 스포츠이다. 또, 감독도 양복이 아닌 유니폼을 입는 스포츠, 뭔가 세상사의 미묘한 법칙들을 적용한 듯한 매우 세부적인 경기규칙 등, 하여간 인생과도 비슷하게 심오한 매력이 있는 스포츠라는 생각은 한다. 

나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에 하필 부산에 있었고 그후 지난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 세월 동안 야구에 별 관심 없이 살아오다 보니, 내게 야구는 거의 최동원 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렇게 야구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기억 속의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게 해서, 거의 향수병을 앓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어린시절, 사직구장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며 듣던 경기장 속의 환성들이 기억날 듯 하고, 경기장 밖에서도 어렵지 않게 마주치던 파란 유니폼의 롯데 선수들. 매점에서 군것질 하던 내 근처에 와 앉아서 밥먹으며 사인해주던 '최동원 아저씨'도 뚜렷이 기억이 난다. 
김용철, 김용희, 한대화, 김일권, 장채근, 유두열... 그 시절 부산에게 야구란 그렇게 공기처럼 익숙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영화는, 큰 기대하지 않았던 만큼, 딱 그만큼의 충족과 실망을 준다.
영국 훌리건 못지 않은 당시 부산과 광주의 야구팬들의 온갖 난동스러운 짓 마저도 밉지 않게 그려져 좋았다.
전두환의 계략도 일부 표현되어 좋았다. (지역감정의 탄생배경을 모르는 젊은이들에겐 도움이 될 듯)
문어체 대사를 연발하는 '김응룡'에 비해 자연스럽게 섬세한 웃음 포인트를 넣은 '성기영' 당시 롯데 감독도 좋았다.
가장 창의적인 전라도 욕설들도 사랑스러웠다. 경기 장면도 눈부시게 발전한 촬영 기술을 잘 활용했고, 전설적인 두 선수의 빛바랜 실제 사진 한 컷으로 마무리한 과하지 않은 엔딩도 좋았다.

그러나 아쉬움도 크다. 
크게 여기자와 '박만수' 캐릭터인데, 여기자는 초반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후 기대를 반감시켰다. 우리나라 스포츠 영화에선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미녀 캐릭터가 역시나 등장한 것이다. 기자로 등장시킨 것으로 스토리텔러 역할을 부여했을 거란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결과적으론 정말 이도저도 아니게 맥을 끊는 존재, 짜증유발자로 끝났다. 
스토리텔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비중으로 출연하면서 그 역할을 했다면 짜증이 더 커졌을 것이다. 왜 생뚱맞은 중간 화자가 있지 않고는 이야기 전개를 못하는 걸까. 이 지점에서 거장 감독과 이런저런 감독, 거장 시나리오작가와 이런저런 시나리오작가로 나뉠 것이다.

그리고 해태의 포수로 분하는 '박만수' 캐릭터.
이 영화에서 선동렬을 제거하고 최동원과 함께 관객의 기억에 남아버리는 만행에 가까운 짓을 하는 가공의 인물이다. 극중 박만수가 생활고 속에 야구에 대한 사랑만으로 버티는 모습, 아들, 늦은 밤 홀로 연습하다 선동렬과 교감하는 장면 등.. 이대로 나가면 극적인 대목에서 홈런까지 칠 것이 뻔한데, 이건 너무나 뻔한 클리셰라서 설마 이 캐릭터가 가상의 인물일 줄은 몰랐다. 아무리 재구성을 했다 하더라도 경기 내용은 사실대로 해야지 이건 정말 심했다. 
부산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한 배우 '조승우'의 꼼꼼하지 못한 사투리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부분 부분 막 입혀놨던 관중 CG도 눈감아 줄 수 있다. 

한마디로, 선동렬에의 감정 이입이 매우 아쉽다. 맥을 흩뜨린 불필요한 캐릭터와 에피소드들, 굳이 말로 설명해주는 스토리텔러의 존재, 이건 정말 우리나라 "실화바탕 휴먼감동 스포츠 인간승리 라이벌 승부 영화"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이 전설적인 이야기를 '이창동' 감독 같은 분이 연출했다면 얼마나 애잔하고 아름다웠을까 하는 생각이 틈틈이 났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 극화했다고 선언만 하고 시작하면 다냐!

 

어쨌든, 전설의 최동원!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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