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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영화들이 그려내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는 대개 이런 모양인 경우가 많다.

첫째로는 시스템의 존립 자체가 흄머니즘의 가치마저 압도해버린 잿빛 메트로폴리스로 표현된다. 둘째로는 극도로 권력화 된 시스템이 급속도로 붕괴되면서 벌어지는 대혼란 후의 황량한 폐허의 모습이다.
설명이 필요없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쌍벽을 이루는 1980년대 최고의 "저주받은 걸작"인 <브라질>이 다루고 있는 세계는 첫번째와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20세기의 어느 곳(somewhere in the 20th century)"라는 자막이다.
참으로 기괴하기도 하고 미래적인 미장센들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이 영화는 분명 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 관한 이야기다.
대체 저 흉칙한 국내용 제목 <여인의 음모>는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건지, 어떠한 음모에 의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어찌됐든 개봉 당시 국내 영화광들의 분노를 들끓게 했었다. 


이 영화 <브라질>은 썩어빠진 관료주의외 시스템의 폭거가 인류를 어디로 데려갈지 비장하게 예견하고 있다.

천재임이 분명한 테리 길리엄 감독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페데리코 펠리니의 <8 1/2>에 대한 오마주로서 <1984 1/2>라는 제목을 염두에 두었었다가 <1984>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되는 바람에 이 아이디어는 무산되었다고 한다.

 
 

<브라질>은 엄청나게 신랄한 작품인데, 가장 표면적인 공격의 대상은 전체주의와 관료주의다. 현대인들의 소외를 구조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구조적인 모순을 다시 관료 사회의 문제로 응축시키고, 관료주의의 폐단을 서류와 절차에 대한 집착을 통해 상징화하고 있다는 점이 메시지이다.


정신없는 속도감과 거침없는 스타일의 변주가 일으키는 감정의 요동 속에서도 일관되게 영화의 전반을 관통하는 것은 불안과 우울함이다. 툭하면 울려퍼지는 태평스러운 주제곡 "브라질"이 그 기능을 돕는다.
테리 길리엄 감독은 잿빛 도시의 해변가에서 "브라질" 풍 음악에 젖은 남자의 실루엣으로부터 영화의 제목을 착안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마지막 장면과 러닝타임을 둘러싼 감독과 제작자 간의 논쟁으로도 유명하다.
러닝타임을 2시간 이하로 줄이고 절망적인 라스트씬을 삭제하라는 유니버설의 압력에 맞서서 1년 반을 싸운 끝에, 감독은 11분 분량을 잘라내 주고 그 마지막 장면을 지켜냈다.
테리 길리엄 감독은 그 싸움의 와중에 이 작품이 비판하고자 했던 모든 요소들을 현실로서 경험해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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