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게리 로스 감독의 <씨비스킷>은 1929년 대공황이 들이닥친 시기의 미국사회의 좌절과 꿈, 그리고 성공의 신화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1929년 10월 24일에 뉴욕 주식 시장이 대폭락하고 그와 함께 몰아닥친 끔찍한 시기였다. 그 공황의 그늘은 미국 전역을 공포로 마비시켰고 실업자는 1300만 명에 달했다. 일터는 사라졌고 빈곤은 가족을 붕괴시켰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씨비스킷>은, 도전정신과 추진력으로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하고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으면서 가족이 풍비박산 나게 되는 찰스 하워드의 이야기이다.
 
찰스 하워드를 연기한 제프 브리지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나여서 이 영화는 나에겐 일단 충분한 볼 이유를 준다.

한때 서부시대를 주름잡았던 퇴락한 말 조련사도 등장하고, 카우보이인 톰 스미스(크리스 쿠퍼 분), 단란한 아일랜드의 이주민 가족에서 성장했지만 공황으로 가족과 뿔뿔이 흩어진 후 경주마의 기수로 성장한 자니 폴라드(토비 맥과이어 분) 등이 영화를 이어가는 역할들이다.

"씨비스킷"은 하워드가 타는 말의 이름이다.

하워드는 씨비스킷과 함께 톰과 자니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온갖 좌절과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씨비스킷을 미국 최고의 경주마로 조련시켜낸다.

말이 주인공인 듯한 느낌 속에 웬 말 영화냐며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동물과 인간의 우정을 다룬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잘 만든 휴먼 다큐멘터리가 가질 수 있는 미덕을 고루 갖춘 수작이다.
 

영화의 오프닝, 1900년대 초,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시기를 통과하는 뉴욕의 모습을 빛바랜 삽화처럼 보여주는 장면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 시기, 도전과 신념으로 무장한 하워드의 모습은 서부개척의 역사를 쓴 미국인의 자긍심을 상징한다. 

영화는 승승장구하던 하워드와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던 톰과 자니가 깊은 절망의 수렁에 빠지는 과정을 미국의 대공황의 시기와 나란히 배치해 그려낸다. 그러나 이들의 절망은 씨비스킷의 성공신화와 함께 루즈벨트로 상징되는 도약과 극복의 시대로 곧 치환된다.


불굴의 의지와 장인정신이 마침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야 만다는 힘을 보여준다.

<플레전트 빌>을 연출했던 게리 로스 감독은 제프 브리지스, 크리스 쿠퍼, 윌리엄 메이시의 탄탄한 연기력에 힘입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냄으로써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생동감 넘치는 말 경주 장면도 볼거리다. 안팎으로 도전에 직면한 미국인들은 <씨비스킷>을 보며 이민과 개척의 역사로 일궈낸 자신들의 과거를 상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영화 자체로서 재미가 있다. 단지, 미국인들.. 그들의 영화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