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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비고는 프랑스의 시적인 리얼리즘이 만개했던 1930년대에 일생동안 단 4편의 영화만 찍었다.
하지만 영화사상 가장 특이한 감독 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장 비고의 아버지는 무정부주의자로 감옥에서 사망했고, 장 비고는 어린 나이에 생모에게서마저 버림받은 후 요양소와 병원, 기숙학교 등을 떠돌아 다녔다.

소르본느 대학에서 공부하던 20년대 초반 무렵에 영화 관련자들과 만나게 되면서 영화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카메라를 구입해서 단편 다큐멘터리 <니스에서>와 <수영선수 탈리스>를 제작했다.
실험영화가 유행하던 시기에 만들었던 두 단편 영화는 도시에 대한 비판과 독창적인 기법으로 주목받았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극영화 <품행제로>에서는 기숙학교 교육의 위선적인 모습과 학생들의 반항을 다루어서 사회문제화 시키기도 했다. 당시의 권력은 이 영화를 "반 프랑스 정신"이라는 명목으로 상영금지 시켰고 결국 1945년에 이르러서야 관객에게 다시 공개됐다.
그 이후로, 장 비고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로 기록된 장편영화 <라탈랑트>에서는 수상 생활자와 도시의 유혹을 주제로 한 젊은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시적인 리얼리즘을 입혀 그려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했던 장 비고는 <라탈랑트>의 최종 편집본을 보지 못한 채 폐결핵으로 요절하고 만다. 당시 나이가 불과 29세였다.

1945년 이전까지 장 비고 감독의 천재성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훗날 누벨바그 세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의 세계를 초현실적이고 마술적으로 그려낸 <품행제로>는 프랑소와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등의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차 대전 후에는 장 비고 상까지 제정되어 해마다 프랑스의 가장 독창적인 작품에 수여되고 있다.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요절한 영화예술가, 일생동안 단 네 편의 작품만을 남긴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가장 독창적인 천재 감독으로 많은 후대의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아티스트이다.

DVD컬랙션인 <장 비고 컬렉션 Masterpiece : Jean Vigo Collection>이 있는데, 이 컬렉션에 수록되어 있는 <품행제로>와 <라탈랑트>는 사운드 복원작업을 거친 버전이라서 모리스 주베르의 음악까지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구 소련이 몰락한 이후 프랑스에 정착한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감독의 인터뷰도 보너스로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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