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작품이다.
무지함의 승리였다.
앞서 봤던 <헬프리스>의 속편이었기 때문이다!!
오프닝에서 아주 짧게 요약되는 주인공의 과거로, <헬프리스>의 장면들이 흑백으로 보여졌다.
주인공 이름도 역시 '켄지'다.
순간적으로, 이 영화에 앞서 <헬프리스>를 봤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으나 오히려 <새드 배케이션>을 먼저 보고 <헬프리스>가 프리퀄인걸 알았다면 놀라움이 더 컸을 것 같다.
켄지는 10년간 무슨 고생을 한 건지를 짐작케 하는 도인 같은 몰골로, 밀항한 중국인을 팔아넘기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유리는 여전히 곁에 있고 아버지를 잃은 중국인 아이 '아춘'도 데려다 돌본다. 대리운전 기사로 생활하다가 여자도 만나 사랑하게 된다.
켄지는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지만 어쩐지 그의 냉철한 눈초리가 삶에의 의지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작은 운송회사의 사장을 대리 운전으로 데려다 주다가 사모님 신분이 되어있는 자신의 엄마를 발견한다.
어린 자신과 알콜중독 아버지를 버리고 떠났던 엄마다.
그리고 그 '마미야 운송회사'는 독특한 주요 배경이 되는데, 그 곳은 다양한 과거를 가진 떠돌이들이 모여 진짜 가족처럼 살고 있는 곳이었고, 켄지는 엄마의 희망에 따라 아춘과 유리를 모두 데리고 들어와 살게된다.
그의 강한 의지는 엄마를 만나고부터 드러나는데, 겉으로는 온화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오히려 폭풍전야의 섬뜩한 느낌을 남긴다. 아주 큰 사건이 생길 것이 틀림없는 분위기다.
그리고, 그 곳에 모여 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남자(오다기리 조), 떠들썩했던 살인사건에서 살아남은 여자 등, 모두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들이지만, 그들은 과거를 말하거나 궁금해하지 않는다. 미래를 계획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다. 당연히 이것이 영화의 메세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하나 둘 다시 과거로 끌려가도 남은 사람들은 순응한 채 없어진 사람들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이런 과정으로 사라진 아춘도 결국 돌아오지 않는다.
혈연이 아닌 다른 이유들로 가족이 된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과 뜨거운 정을 보여줄때도 뭔가 사건이 터질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헬프리스>이후 10년은 감독의 시선을 몹시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꾼것 같긴한데, 얕은 흙으로 조심스럽게 덮여있는 시한폭탄인 것 같아서 그렇게 만들어진 가족의 행복한 모습에도 안심이 되질 않는다.
가장 모를 인물인 켄지의 엄마는, 황당할 정도로 착하다. 거의 병적으로 아무나 가족으로 끌어안는 사람이다.
묘하게 섬찟함을 풍기는 엄마는 떠난 아춘을 기다리지 마라고 하고, 자신의 아들인 유스케가 이복 형인 켄지의 손에 죽는 한계점에 이르러서도 담담한 미소로 감정을 감춘다. 켄지의 아이를 가진 여자의 배를 보며 "유스케가 환생하는 거야"라는 무시무시한 말도 한다.
영화가 풍기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메시지, 온화하고 예쁜 화면들, 전작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눈치채는 재미를 주는 인물들의 등장, 두 영화간 간격 만큼의 세월이 실제로 흐른 후 자연스럽게 멋있어진 나이든 아사노 타다노부.
공감하기 힘든 면이 있는 그 엄마가 표현하는 희한하게 섬뜩한 모성애와 타인에 대한 포용력, 이해심과 사랑. 멋진 영화다.
'오다기리 조'의 등장도 몰랐다.
'고토' 역의 오다기리 조는 큰 비중이 아닌데도 당연히 주연 명단에 올라있었다.
비중 없던 고토가 뜬금없이 선사하는 명장면이 하나 있는데, 켄지와 함께 풍경이 멋진 산등성이에 올라 바람에 흔들리는 들판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 이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일 모른다.
"이 풀들은 먼 바다에서 흘러 온 이끼다. 일본 땅도 이름모를 머나먼 아메리카나 어떤 먼 바다로부터 흘러 온 섬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이루는 '가족'이라는 관계 역시 그 근원을 알 수 없고, 같은 피를 나누는 것만이 가족의 끈끈함을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맨 마지막 장면은 고토가 과거로 잡혀가는 차례인데, 고토를 잡으러 온 무서운 사채업자들의 머리 위로, 영화 내내 희망을 상징하던 비누방울이 터져 내리는 것으로 멈춘다.
굽은 도로를 보는 데에 사용하는 볼록거울을 앞에 놓고 긴 머리칼을 잘라 하늘로 날리는 장면이 정말 아름답다. 엄마를 처음 찾아가는 장면이다.
아사노 타다노부의 그 눈빛... 오다기리 죠의 미끈하게 고운 얼굴보다 정확히 3,286배 더 멋지다.
오프닝에 흘렀던 곡 "Sad vacation"도 참 좋았다.
두 아들이 싸우던 공사장에서 흐르던 웨스턴 느낌의 비장한 음악은 웃기면서도 묘하게 어울렸다.
"어른이 된 내게, 더 이상 부모와 가족은 필요치 않다."
상처가 깊은 켄지는 이 말을 자주 한다.
부모란,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더이상 육체적, 경제적 보살핌이 필요치 않은 나이가 되어서도 가족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 영화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국영 사망 당시의 홍콩 현지 반응, 장국영의 희귀 사진들 (0) | 2022.10.02 |
---|---|
실화가 아니어야 하는 수작, 고레에다 히로카즈 <아무도 모른다> (0) | 2022.10.01 |
방송 촬영의 섬뜩한 속성, 아사노 타다노부 <포커스> (0) | 2022.10.01 |
짐 자무쉬 X 빌 머레이 크로스!! <브로큰 플라워> (0) | 2022.10.01 |
권선징악을 믿는 착한 당신께 추천. 우디 앨런의 <매치포인트> (0) | 2022.10.01 |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싹수를 보여준 <디스턴스 Distance> (0) | 2022.10.01 |
아카데미 수상 요소를 두루 갖춘 <킹스 스피치> (2) | 2022.10.01 |
걸작 한국영화 이창동 감독의 놀라운 데뷔작 <초록물고기> (0) | 2022.10.01 |